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찬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짖궂었느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마르케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있었다.) -. 밀란 쿤..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 계획을 세우기를 포기했고. 숙소도 안정했다. 그냥 발이 멈추는데서 먹고 자고 구경해야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거기서 한동안 멈춰서서 책도 읽고, 글도 쓸거야. 일상과의 접점인 휴대폰. 인터넷을 멈추기로 했다. 인터넷을 멈추자 어디도 가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밀려왔다. 낯섦이 주는 두려움. 그리고 그만큼의 흥분 . 역시나 모든 문제는 겪기 전에 생각한 것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해.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관광안내센터가 눈에 띄었고 서너개의 지도를 챙겼고, 터미널 안 카페에 들어가서 지도를 뒤적이며 가고 싶은 길을 찾았고 어렵지 않게 첫 목적지를 정했다. 아무 계획 없이 발닿는대로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첫 목적지론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
1 꿈에 네가 나왔다. 이제는 '너' 외에는 달리 부를 이름이 없는 네가 나왔다. 너를 부를 수 있는 참으로 다양한 이름을 가졌을 그 때에도 잘 찾지 않던 나의 꿈에, 이제와서 새삼 나타난 너는 "나한테 그러면 안됐어"라는 이야기만은 선명하게 남겨놓고, 이내 사라졌다 . '왜 이제야'라는 질문을 되뇌이다 보니 어느새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더라. 아마도 딱 1년 전 이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도 없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들 돌아가지도 않을 관계의 사람이 헤어진 지 1주년을 기념하는 것마냥 이렇게 나타나는 것도 상당한 악취미라고 생각하지 않아? 참으로 꿈답게도 다양한 사람이, 상황이 입체적으로 섞여있는 와중에도 그 말만은 머리에 선명하게 남았다. 너는 그러면 안됐어. 뭘? 내가 헤어진 직후에 떠..
생각in다락#1005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경험이다. 나를 곧 죽일 것처럼 보이고,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문제들은 대게 지나고보면 느껴지는 정도보다 형편없을만큼 작게 마련이고,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경험들은 내 앞에 놓이는 많은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의 크기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덜 당황하고, 더 빨리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 그것은 엄청난 능력의 향상이 아닌 경험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경험은 마음에 뻘처럼 쌓여 점차 마음의 깊이를 메워간다. 하나하나에 모두 뜨거울 수 있었고, 한없이 깊었던 감정들은 경험이란 뻘을 파고들지 못하고, 얕게 그저 그런 감정들로 뒹굴거릴 뿐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뿌듯한 동시에 답답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 마음이 완전히..
#1드라마 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예뻐보이고 싶어졌어. 나한테.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걸 할 때 그 사람이 제일 예뻐보이더라고. 나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예뻐보이고 싶어졌어. 딴 사람 말고 내 스스로한테."이 드라마를 한 편도 챙겨보지 않았고, 속상한 기억도 함께 떠오르는 드라마다만, 어쩌다 보게 된 이 한 장면으로, 이 드라마는 나에게 매우 괜찮은 드라마로 남아있다.새삼스레 이 장면을 떠올리는 건 마감이 끝난 9월의 첫 날이기 때문에. 연초에도 안했던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 목표가 저 장면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정도 되시겠다. 이번달은 멋있게 살기로 정했다. 누구도 아닌 나한테. 미루지도 않을 거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거고, 지나고 나면 이번달은 진짜 멋있게 잘 보냈다고..
다락방 문화칸#0830뭔가 잘못을 했을 때보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가끔 그렇게 그냥 기대고플 때가 있다.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들 뒤에 살풋 숨어들면 그들은 '무슨 일 있는지' 물어봐줄 것이고, 이를 냉큼 물고 뛰쳐나온 나의 모든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해냈음' 이라는 결론에 도착할 것이다. 막연히 그런 기분이 들 때 찾아듣는 노래들이 있다.-최한솔 무슨 일 있나요. 왜 눈물 짓나요. 답답하고 속상해서 그런 건가요. 참 안쓰러워서 괜히 내가 미안해요.어쩌면 오늘도 바람시리고 아무 의미 없는 하루가 지났나요. 집에 가긴 싫고 그렇다고 딱히 불러낼 누군가도 생각나질 않아.그래도 오늘 그대 충분히 잘해냈어요. 답답하고 막막하고 눈물 나..
#1 '일'이라는 건 항상 재미가 없을까? 나에게 맞는 일을 하면 하루하루가 정말 신나지 않을까? 나는 디자인하거나 꾸미는 걸 좋아하니, 디자인 공부를 해서 디자이너를 하거나 디자인을 하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 하루하루가 정말 재미있을 거야. 아니면 원래 하고 싶었던대로 AE를 시작해서 매번 클라이언트가 주는 RFP에 맞추어 매번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멋진 기획안을 만들어내면 보람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야. 따위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체로 복잡한 데이터 분석 작업(오늘 같은 경우엔 4년치의 매출을 일별로 정리하고, 주중, 주말별로 어떤 추세를 보이는지, 휴일의 유무에 따라 매달의 매출이 어떻게 변하는지, 주차별로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등의 분석이라든가)을 하다가 집..
#1 영화를 보다보면 어떤 영화는 장면이 남고, 어떤 영화는 대사가 남고, 어떤 영화는 생각이 남는다.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 은 장면보단 생각으로 남는 영화였다(물론 하정우는 생수랑 개사료마저도 맛있어보이게 만들 수 있는 먹방 마스터였다는 점은 예외). 이 영화는 내가 지금껏 봤던 이야기 중에 가장 세련되고, 잘 담아낸 세월호 이야기였다. 감독이 이를 의도해든 하지 않았든 말이다. 이 영화는 정말 단순하고, 익숙하고, 진부하게 답답하다. 주인공은 우연하게 터널에 갇히고, 그 터널은 당연하게도 부실공사였으며, 사람들은 이에 분노한다. 살려야한다는 여론이 생기고, 언론은 '단독'보도를 찾아나서고, 정치인들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실로 인간미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정의감 넘치는 소방관이 등장하고,..
#1오랜만에 다락을 찾았다. 형이 시험이 끝났고, 예상과 달리 너무도 빨리 집으로 내려가버렸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온 집은 이내 현실에 존재하는 다락이 되었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들어갔고, 게임을 했고, 드라마를 봤고, 잠을 잤다. 주말이 되어도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청소도 최소한으로 정말 이건 내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위협한다 싶을 정도의 것들만을 치웠다. 참 많이 잤고, 선물로 받은 향초를 켜봤으며 침대머리에 기대서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봤다. 아주 조금. 그러다보니 공부도, 블로그도 시들해졌고, 해야됨을 알면서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간이 흘러갔다. 아무 것도 안할 때 늘 그러하듯이 엄청나게 빠르게. 다시 한 번 나를 움켜질 계기가 필요했다. ..
#1 블로그와 조금 친해진 것 같다. 처음엔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참으로 어려웠고, 누구를 청자로 삼아 글을 써야할 지도 고민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냥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게 될 미래의 나를 독자로 삼아 내가 표현하고 싶은 생각들,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을 솔직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공간에 참 많이 솔직해진 느낌이다. 다락방마냥 간직하고 싶은 생각들, 남몰래 조용히 속살거리고 싶은 말들을 참 많이도 밀어넣고 있다. 그래서 블로그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혼자 뿌듯해졌다. 조금만 더 다락방이 차면 그 때는 나를 좀 더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들도 초대해봐야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지금 같다면 첫 초대가 아주 먼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2 나는 노래를 듣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