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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in다락

생각in다락#0713

다락귀신 2016. 7. 18. 21:52

#1

오랜만에 다락을 찾았다. 형이 시험이 끝났고, 예상과 달리 너무도 빨리 집으로 내려가버렸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온 집은 이내 현실에 존재하는 다락이 되었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들어갔고, 게임을 했고, 드라마를 봤고, 잠을 잤다. 주말이 되어도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청소도 최소한으로 정말 이건 내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위협한다 싶을 정도의 것들만을 치웠다. 참 많이 잤고, 선물로 받은 향초를 켜봤으며 침대머리에 기대서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봤다. 아주 조금. 그러다보니 공부도, 블로그도 시들해졌고, 해야됨을 알면서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간이 흘러갔다. 아무 것도 안할 때 늘 그러하듯이 엄청나게 빠르게. 다시 한 번 나를 움켜질 계기가 필요했다. 집 근처에 있어 오며가며 보고 관심을 가졌던 실내 클라이밍을 해보기로 했다. 재밌을 것 같다고 설레면서도 이내 또 한두달만에 시들해지고 돈을 써봤던 어떤 기억이 되어 얕고 넓은 사교용 지식 혹은 경험으로 다락 한 구석에 처박히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돈을 번다는 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지만, 그 경험을 모두 의미있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은 자기가 자기 삶의 키를 잡고 살고, 부지런해지는 것만이 길인데, 그게 누구나 가능하다면 세상에 위인전은 없을 거다. 아마도. 


#2

책을 읽는 행위는. 아주 자주 생각하고, 아주 가끔 일어나는 그 행위는 종종 다른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장들이 내가 평소에 고민하던 생각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도무지 머리 속에서 섞이지 않고 어지럽게 섞여있던 다양한 색의 생각들을 조화로운 하나의 색깔로 녹여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매력 중 첫 번째다. 이번엔 서태지와 박칼린이 제작했다는 뮤지컬 <페스트>가 보고 싶어서 읽고 있는 원작 <페스트>-<이방인>도 읽지 않았고, 카뮈라는 이름을 알고만 있었지 그 글을 보는 것은 처음인데, 역시나 유명한 작가, 유명한 작품 중에 쉽게 쉬이 읽히는 책들은 별로 없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조금 조금 꼭꼭 씹어가며 읽다 과부하가 걸리면 졸다를 반복하고 있는 그 책-를 읽다가 발견한 글 한 조각을 담아 본다.

"당시 용기와 의지, 인내심이 얼마나 급격히 허물어졌던지, 그들은 그 수렁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해방의 날은 결코 생각하지 않고 더이상 미래도 바라보지 않은 채, 말하자면 항상 두 눈을 내리깔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고통을 숨기고 방어자세를 취하면서 싸움을 포기하는 그런 신중한 방법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하고 싶었던 의기소침한 상태는 면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재회를 상상하면서 페스트를 잊을 수 있는 수많은 순간들을 사실상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심연과 정상 중간에 좌초되어 매일같이 정처 없이 헤매고 메마른 추억 속에 버림받은 채,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떠다니면서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지 않고는 힘을 얻을 수 없는, 방황하는 유령처럼 살았다. (···)

이런 극도의 고독 속에서 이웃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었고 저마다 홀로 자신의 걱정에 사로잡혀있었다. 어쩌다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자기 감정과 관련된 어떤 사실을 말한 뒤 대답을 듣게 되면, 그 대답이 어떤 것이든 대부분의 경우 그것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상대방과 자신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는 오랜 시간을 두고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괴로워하던 끝에 심정을 표현햇고, 그가 전달하고자 한 이미지는 기대와 열정의 불 속에서 오랫동안 익혀온 것인데, 상대방은 그것을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는 싸구려 괴로움이나 연속극에서 볼 수 있는 우울증 같은 상투적인 감정일 거라고 상상했다.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그 대답은 빗나가기 마련이어서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이상 침묵을 견딜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남들이 진심이 담긴 진정한 말을 할 줄 모르게 된 이상 자기도 체념하고 시장에서 쓰는 말투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 자신도 단순히 보고하거나 지엽적인 일화를 전하는 상투적인 방식. 말하자면 일간지의 기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가장 절실한 고통이 흔히 일상 대화에서 쓰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드러나는 게 보통이었다. 페스트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이런 대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수위의 동정을 얻고 옆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내가 보고들을 수 있는 논쟁의 장인 내 주변과 온라인을 우리 사회라고 일반화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것들이 전부니까 일단은-헬조선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지만 세상의 온갖 힘듦과 부조리함 등을 한 데 모아놓은 듯한 무시무시한 어감을 가진, 말로 대표되는 어떤 페스트가 돌고 있는게다. 나는 페스트가 창궐해 출입이 폐쇄된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한 이 글에서 묻어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았고, 왠지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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