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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to다락

생활in로테르담 0116

다락귀신 2019. 1. 16. 08:24

0115

#1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신기한 일이다. 잠시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나를 관찰하는 그런 기분이 된달까. 우리 애인이랑 연애를 시작한 이래로 내 말투 속에, 행동에서 애인을 발견하는 건 그저 반가운 일이었는데, 시간도 거리도 떨어져 있다보니 반가움 사이로 슬몃슬몃 외로움이 스민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역시나 더 크니 잊기 전에 하나 둘 기록해본다.

1. 우리 애인은 못 왔지만 우리 애인네 수건은 따라왔다. 빨래 개다가 서울대학교 수건 발견..

2. 시장보면서 사이즈별로 지퍼백을 사왔다. 공기를 빼가며 잘 눌러진 야채도, 파도, 떡도 냉동실에 차곡차곡 테트리스됐다.

3.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뒤집어 말리기보단 마른 수건으로 닦아서 바로 넣는 습관이 생겼다.

4. 빨래를 개는 방식이 변했다. 양말도, 속옷도

정작 저 모습들을 마주했을 땐 반가워서 꼭 말해줘야지 생각했는데 써놓고 보니 뭔가 민망한 마음이 들어 지울까를 상당시간 고민했다. 정작 글로 써놓고 보니 이거 뭐 별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애인이랑 함께 있는 기분이 들어서 잠깐이나마 설레고 좋았던 순간이었는 걸. 우리 애인이 바꿔놓은 것들이 이리도 잘 남아있으니 이제 우리 애인만 오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아직 멀고 그렇다. 


#2

요새는, 이라고 하기엔 고작 3일째를 맞이하고 있을 뿐이지만(잘 쳐줘서 지난 주말을 쳐도 4일) 하루를 꽉 채워서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침 일찍부터 수업준비를 시작해서 11시 반 남짓까지 도서관에 있으니. 그렇게 해도 아직 읽으라는 거 꼼꼼히 읽을 시간은 안나는 것 보면 정말로 빡빡한 6개월여가 되긴 할 모양이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한글을 접할 수 있는 채널들도 줄여가고 있다. 즐겨보던 게임 유튜브들도, 커뮤니티들도 들어가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러면서 생기는 잠깐잠깐의 쉬는 시간을 잘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시작했다. '굿플레이스'라고 25분짜리 짤막짤막한 드라마라 밥먹으면서, 자기 전에 등등에 잠깐잠깐 보다보면 한두 에피소드씩은 쑥쑥 넘어간다. 세상 못되게 살았던 여자주인공이 사후세계 시스템 오류로 착하게 산 사람들만 가는 굿플레이스에 떨어지는데 어쩌구 저쩌구. 영어공부한답시고 한글로 보고 영어자막으로 돌려보고 하면서 시간을 두 배로 쓰고 있다. 효과가 있어야할텐데.


#3

그래도 직장밥 먹었다고, 그 와중에 재무수업은 귀에 잘 들어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공부하면서 생각보다 내가 배웠던 지식들이 고차원적인 지식들이었던 것은 아닐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영어로 듣는다 뿐이지 한글로 들었으면 내가 대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이나 대외활동을 통해서 배웠던 지식들이랑 비교해서 아주 그냥 막 탁월해서 눈이 확 뜨이고, 뒤통수에 별이 번쩍하고 그런 느낌은 아니다. 


#4

퍼스널리더십 수업에서 명상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하기 싫어하는 것은 무언지, 그 하기 싫어하는 것의 근원은 무언지 등등을 알아보라는 과제를 내줬다. 역시 가장 하기 싫은 거라면 1,000자를 영어로 써야하는 그 과제일까. 그 와중에 고민을 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내가 제일 많이 하는 고민은 내가 너무 의욕이 없고, 게으른 것은 아닐까, 나는 이미 번아웃이 되었고 다시 20대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을까 등이었는데, 가만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사업도 실패하고, 직장생활에서도 딱히 탁월한 모습을 보여서 인정받지 못했고(마케팅팀에 있을 때는, 물론 그건 팀장이 거지같았던 게 확실하지만, 되려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았었으니) 하다보니,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고(특히 직장생활에서는), 그러다보니 뭔가를 시도하기보다는 하는 척만 하고 발을 빼는 쪽으로 흘러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한 해를 통해서 이 고민을 되짚어보고 곱씹어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오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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