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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to다락

일상to다락#0221

다락귀신 2017. 2. 21. 22:23

일상to다락 #0221

정리가 되지 않은 마음을 듣는 일은 참으로 조심해야되는 일이다. 정리되지 않은 타인의 아픔을, 혼란을, 자신마저도 정리를 못할 정도로 흩어져 있는 감정을 하나로 그러모아다 원래의 형태를 찾아주고, 거기다 위로까지 더할 수 있다니.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해버릴 거다.

내가 참 아끼는 후배의 연애이야기를, 정확히는 이별이야기를 들었다. 밥먹으면서 던진 연애는 잘 하고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은 그 후배는, 왜 헤어졌냐는 내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 아직'이라고 대답했고, 거기서 멈춰야 하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러가서 굳이 더 이별의 이유를 묻는 우를 범했고, 후배는 정리가 안된 자기 감정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모르겠어요. 첫 사랑을 만났다고 할 수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는데, 그런데 첫 이별은 확실히 한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후배는 격정적이진 않게, 중간중간 잘 모르겠단 이야기를 섞어가며, 생각보다 성숙하고 깊이 있는 고민과 함께 자신의 이별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사람을 만나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아주 자주 보던 편은 아니었으니까. 한동안 안보다 다시 보면 좋아지곤 했었는데, 취업을 하면서는 그마저도 아니게 되었어요. 내 마음 속에서 이 사람을 정리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나를 정말 좋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서 그 사람을 완전히 정리한 이후에 나는 완전 괜찮은 상태에서 이제 끝! 이라고 선언하듯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나도 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 그 때 솔직한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와중에도 말 하나 꼬이지 않고 차분하게 헤어지던 시기의 감정을 풀어냈다. 그 명료함이 타고난 똑똑함인지, 자기 감정을 수없이 곱씹은 잇자국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 이후로도 이야기는 길지는 않게, 하지만 깊게 이어졌다.

세상에 연애를 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연애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또 새로운 방법의 연애를, 새로운 방법의 이별을, 새로운 형태의 슬픔을 곱씹는 방법을 본 것 같다. 항상 어린이 취급하던 후배였고, 막내동생처럼 항상 우쭈쭈하던 후배였기에, 안아프다며 아파하는 그 머리라도 좀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1년이 좀 넘는 시간을 못 보는 사이에, 후배는 훌쩍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냥 '네가 아팠겠구나 괜찮아 괜찮아.'하고 쓰담쓰담 비벼 흩어버리기엔 슬픔의 깊이도, 생각의 깊이도 너무 깊어져 있었고, 내 맘대로, 내 잣대로 그 감정을 누르거나 정돈하는 건 폭력같았다. 아니 폭력이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후배에 대한 예의를 담아, 자신의 감정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 주기로 했다. 새삼 애들은 빨리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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