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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문화칸

다락방 문화칸 #0208

다락귀신 2017. 2. 9. 01:53

[라라랜드] 별이 별에게 바치는 송가

두 번 보고 싶은 영화는 좋은 영화고,
두 번 봐도 좋은 영화는 인생영화지

처음 볼 땐 영화를 따라 흐르고, 거슬러 오르며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럼에도 매우 좋았고, 여러 장면이 머릿 속에 남았고)

두 번을 보고 나서야 머리 속에 한 줄기로 정리가 된 영화가 바로 이 라라랜드다.

결과를 알고 보기에 과정은 더욱 빛났고, 그래서 더 슬펐고,
내용을 알기에 영화의 치밀함에도 관심을 기울일수 있었다.

이 영화는 대사도, 노래도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OST와 그 가사를 따라 내용을 하나씩 짚어내려가보기로 한다.

<Another day of sun>
영화는 시작하고 사람들은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새로운 태양이,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고, 새로운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노래한다. 성별도, 인종도, 나이도 다양해 보이지만 춤을 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차는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자신만의 특별한, 또 다른 태양을 바라는 이들이 찾는 곳. 그 곳이 바로 "라라랜드"다.

 

<Someone in the crowd>
라라랜드를 찾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특별한 군중 속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시에, 자신이 재능 많은 사람들 사이의 평범한 누군가(Someone)는 아닌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앞으로 성공할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고, 인생을 향해 카운터를 날리겠다 다짐하는 멋없는 허세는 자신에 대한 작은 위안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찬란하게 하지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LA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City of stars>
이 영화의 메인 타이틀이자, 영화 내내 가장 많이 나오는 노래일 것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라라랜드 속에서 살고 있었기에, 서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순간에도 그들은 물어봐야한다.

어쩌면 이것은 황홀한 그 무언가의 시작인지,
아니면 또 한 번 이루지 못할 한낱 헛된 꿈인지.

그리고,

당신은 나를 위해서만 빛나는 것인지.
나만을 위한 특별한 별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미아는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될 것이라 선언한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고, 하늘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이 가슴을 채우며
내가 있으니 넌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는.
지금 그 무엇보다 밝게 빛나는 그런 세상 속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의 별이다.

하지만,

가을(FALL)이라는 자막이 FAIL과 겹쳐 보였던 것은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
사랑이 무르익는 가을,
세바스찬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꿈을 상처입히고, 현실에 타협한다.
그리고 밴드에서 연주하는 세바스찬을 바라보는 미아의 혼란스러운 눈빛.
방향상실이다.
서로가 서로의 꿈을 비추는 별이었기에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빛나야 했다.
이유야 어떻든, 한 쪽이 그 빛을 잃는 순간 상대도 자신의 꿈을 향한 길을 잃는 관계.
그것이 세바스찬과 미아의 관계였기에,
세바스찬의 타협은 곧 미아가 꿈을 향한 길에서 빛을 뺏는 행위였다.
이들은 그렇게 삐걱거리고, 삐걱거리며 조금씩 꿈에서, 서로에게서 멀어져간다.


<Audition>
집 앞에 있는 도서관을 기억하는 것,
그것 하나로 다시 미아를 오디션장에 세울 수 있었던 건,
그 도서관이 이모와 영화를 보던,
그 영화에서 본 장면을 방에서 따라했던,
미아의 꿈과 그 시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작. 그 순간의 설렘, 그리고 희망을 기억하고 응원해주는 것은
결국 꿈을 꾸는 그댈 위하는 가장 훌륭한 응원이고,
우리의 시행착오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렇게 미아는 한 번 더 시행착오를 감수할 용기를 얻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끝없이 펼쳐진 하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석양을 향해,
한 번 더 꿈을 향해 
빛을 품어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가까스로 빛나기 시작한 서로이기에,
누구라도 한 쪽이 빛을 잃으면 서로가 길을 잃는 둘이기에,
꿈을 찾는 서로의 길 앞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모 아니면 도다.
함께 빛을 잃을지, 서로 빛을 쫓을지 말이다.
서로의 꿈의 끝에 서로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렇게 둘은 흘러가는 대로 서로를 맡기기로 한다.
꿈을 꾸는 그댈 위하여. 비록 바보같다 하여도 말이다.


<Epilogue>
서로의 꿈을 이룬 미아와 세바스찬이 만나는 그 순간은,
세바스찬에게는 아주 예상치 못한 순간만은 아니었을게다.
유명한 배우가 된 미아를 언젠가는 만날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을테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수십, 수백번 생각하고 또 연습했을 거다. 그럼에도 그 순간이 정작 눈 앞에 벌어지자 넘쳐나는 감정 속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겨우 "Welcome, Seb's" 한 마디만을 짜낼 뿐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와 둘의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행복한 이야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 장면은 이루지 못한 행복한 사랑에 대한 회한이고, 미련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봤을 때 이 장면은 다소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찬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짖궂었느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마르케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있었다.)
-. 밀란 쿤데라 <농담> 중에서..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서 나왔던 이 야기처럼 미아와 세바스찬은 자신이 누구인지,누가 되고 싶은지 모르는 미숙한 사람들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만나 비로소 꿈을 꾸고, 또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 그리고 "Welcome Seb's"는 단지 우연찮게 만난 미아만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들을 만들어준, '과거의 우리'에 대한 헌가는 아니었을까.(실제로 Epilogue 속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의 손을 이끌어 현재의 Seb's로 들어와 앉는다.) 

서로의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 그리고 희미하게 머금는 두 사람의 미소를 뒤로 하고 깔리는 <City of stars>의 허밍이 더 가슴을 쥐어짜고, 먹먹하게 만드는 건 서로를 찬란하게 비추었던 그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에서의 행복한 시간 모두가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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