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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사랑칸

다락방 사랑칸#0627

다락귀신 2016. 6. 27. 21:38
#1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특히 좋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는 일은 더더욱 사소하기 그지없는 것들을 계기로 일어난다. 드라마처럼 로맨틱하고 , 극적인 상황 속이라든가, 귓가에 종소리가 들리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기적같은 상황에서 눈 앞의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풍선마냥 부풀어오르는 그런 연애를 적어도 나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그 몸집을 키우고 키워오다가 그 몸집이 한계에 다다를 만큼 빵빵하게 부풀어올랐을 때쯤, 평상시라면 눈치도 채지 못할 아주 작은 자극 하나에 펑 하고 터지며 좋아하는 마음을 사방에 흩뿌려놓곤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 사소한 자극들은 너무나 사소하기에 지나고 보면 그 사소함이 더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상욱 시인과 옥상달빛이 함께 만든 [좋은 생각이 났어, 니 생각]이라는 앨범의 소개글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글 중에 이런 글이 있다. 포털사이트 영화 섹션에 있는 영화 한 줄 평인데, 별점 10점 만점을 준 이 리뷰에는 영화를 칭찬하거나 추천하는 내용 대신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그냥 너랑 봐서 좋았다."

꺄~! 이렇게 설레는 영화평이라니. 근데 나도 이랬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을 것들이 좋아하는 누군가 때문에 좋아지고 그랬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억지로 찾으려고 애쓰면서, 익숙해진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인색해지고 있었다.

니가 왜 좋은지
딱 생각이 안 나지만,
니가 생각이 나면
참좋다.'

시인다운 앨범소개라고 생각하면서도, 참 공감가는 글이었다. 도도씨는 나 때문에 <아는 여자>를 봤고, 나는 도도씨 때문에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화장실 불을 안 끄는 사람이라고 구박을 들은 이후, 나는 화장실 불을 제때 끌 때마다 내가 도도씨를 좋아한다고 느낀다. '나새끼'를 나름 순화해서 쓴 '나놈'이란 말도 이해 못한다던 인터넷과 담쌓은 내추럴본 이과생 도도씨가 '내일은 뭐할거에요?'. '내일은 숨쉴 거에요.'  따위에 '응 큰일하네.'라고 당황하지 않고 받아 넘길 때 나는 도도씨가 나를 좋아한다고 느낀다.
도도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각자가 '너 때문에' 하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되는 사소한 행위들 속에서 틈틈히 좋아하는 마음은 펑펑 터지고 있고, 우리는 조금씩 더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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